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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2017-09-02

























우리는 섬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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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툭- 뱉어놓고 늘 후회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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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유서처럼 그 수많은 유언들을 가득 담고 있을 당신의 마음을 생각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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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편지들이 궁금해 손에 잡히는 대로 펼쳐보았다. 한참을 읽어보다 조금 엉뚱한 대목에서 눈물이 터졌다.

1998년 가을, 여고 시절 그녀가 친구와 릴레이 형식으로 주고받은 편지였는데

 "오늘 점심은 급식이 빨리 떨어져서 밥을 먹지 못했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10여 년 전 느낀 어느 점심의 허기를 나는 감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것으로 편지 훔쳐보는 일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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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를 지나며 나는 더 아팠어야 했는데, 아프지 않으려 하지 말고, 일을 접어두고 병원에 가지 말고, 

따듯한 물을 많이 마시지 말고, 구깃구깃한 약봉지를 뜯어 입에 털어넣지 말고, 밀린 걱정들을 떠올려가며 더 아팠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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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몇 번이고 되뇌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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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이렇게 외연을 넓히며 사는 삶을 그리 길게 이어나가지 못한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쉽게 지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많이 먹으면 탈이 나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며 맺는 관계에도 어떤 정량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 정량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분명한 사실을 적어도 나는 한번에 많은 인연을 지닐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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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대했던 지난 시간 같은 것에 기웃거린다.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과거의 일들과 마음만으로는 될 수 없을 미래의 일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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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고독은 내가 나를 만나야 겨우 사라지는 것이겠지. 그러다 다시 금세 고독해지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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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않을 때 좋음은 오지 않는다.

내가 남을 속였을 때도 좋음은 오지 않지만 내가 나를 기만했을 때 이것은 더욱 멀어진다.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해, 가까운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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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자책과 후회로 스스로의 마음을 더 괴롭게 할 때, 

속은 내가 속인 나를 용서할 때, 가난이나 모자람 같은 것을 꾸미지 않고 드러내되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그제야 아는 나를 마음에 들어 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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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면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도 좀 내리고 머리 한쪽에 쨍하게 아파올 정도로 바람도 차야 한느 것 아니겠냐며, 

(지난 겨울이 내게 그랬다. 올해 겨울도 그런 겨울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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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현실은 꽤 많은 것을 스스로 포기하게 하고 또 감내하게 만든다. 

물론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닌 <스스로가 원한 삶>을 사는 것이니 불평을 길게 놓을 수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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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순간마다 나는 스스로에게조차 마음을 내어주지 않을 때가 많았다.

믿으면 믿는 만큼 상처를 돌아올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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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 마음의 폐허에서 나는 다시 새로운 믿음들을 쌓아올릴 것이다. 

믿음은 밝고 분명한 것에서가 아니라 어둡고 흐릿한 것에서 탄생하는 거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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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줄 것은 없고 만나면 한번 안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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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고 흘러가다 툭툭 떨어지기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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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누구든 간에 정중함과 예의를 잃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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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공간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주고

여행의 시간은 그간 우리가 지나온 익숙함들을 가장 눈부신 것으로 되돌려 놓는다.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 

(떠나고 싶다. 떠나도 떠나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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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나는 병을 앓을 것이다. 하던 일을 제쳐두고 통영에 가려 하는 병.

따지고 보면 병도 내 삶의 취향이라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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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자체보다 가난에서 멀어지려는 욕망이 삶을 언제나 낯설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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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여전히 나는 후회와 자책으로 삶의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후회하고 자책할 일이 모두 동날 때까지. 

(동이 나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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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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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울고,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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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나고 있는 이 길 위에는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는 것들, 생각보다 더 빠르게 다가오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 사이사이에서 경적 소리를 들어가며, 눈을 비벼가며, 손을 흔들기도 해가며 우리가 이렇게 스쳐간다. 

(어느 순간, 이 곳에 닿아버린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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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그 어느 때보다 진실했고 간결(했기 때문에)했지만 점점 억울한 마음이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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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존재가 온전히 존재하려면 온전히 소멸해야 한다.

우리가 존재했다는 것을 아무도 인식하지 못할 때 '영원'이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발음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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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차다. 숨을 깊게 들이면 코에서부터 가슴까지 냉한 기운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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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맞이해야 할 대가 많았다.

부당하고 억울한 일로 마음 앓던 날도 있었고 내 잘못으로 벌어진 일에는 스스로를 무섭게 몰아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무겁고 날 선 마음이라 해도 시간에게만큼은 흔쾌히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라 여긴다.

오래 삶은 옷처럼 흐릿해지기도 하며, 나는 이 사실에서 얼마나 큰 위로를 받는지 모른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9월.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


그래서 9월도 울고, 또 울으려고 한다.

여름이 지나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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