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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늘, 신경숙

2017-07-30



























마음속에 산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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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면 종적을 감추고 싶어진다. 아직도 남아 있는 환상, 찬란한 봄은 찬란한 만큼 그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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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사랑은 영원해도 대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아야 했을 때, 

사랑이란 것이 하찮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영원을 향한 시선과 몸짓들이 어느 날 꿈에서 깨어난 듯이 사라져버리다니, 멀어져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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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오래 그리워하다보니 세상 일의 이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성과 소멸이 따로따로가 아님을, 

아름다움과 추함이 같은 자리에 있음을, 해와 달이, 바깥과 안이, 산과 바다가, 행복과 불행이.

그리움과 친해지다보니 이제 그리움이 사랑 같다.


흘러가게만 되어 있는 삶의 무상함 속에서 인간적인 건 그리움을 갖는 일이고,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을 삶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며,

악인보다 더 곤란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그리움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게 됐다.

그리움이 있는 한 사람은 메마른 삶 속에서도 제 속의 깊은 물에 얼굴을 비춰본다, 고.


사랑이 와서, 우리들 삶 속으로 사랑이 와서 그리움이 되었다.

사랑이 와서 내 존재의 안쪽을 변화시켰음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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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적한 짧은 물음은 찡해오는 코끝을 베갯잇에 묻게 했다. 내가 젊다는 것이 아버지 앞에선 전혀 행복하지 않다. 내가 젊기 때문에 그는 늙은 것이다. 

(아- 찡해오는 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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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리고 그가 젊다면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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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 마음을 붙이고 싶은 신기루들, 붙잡으려 하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들,

다가왔다가 멀어져가는 것들, 끝끝내 암호처럼 남을 견뎌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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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너무 수수께끼 같다. 아득한 뭉게구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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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는 언제나 혼자 있다고 느꼈고, 혼자 있었다. 성격 때문에 혼자 있었고, 특출난 본성 때문에 혼자였고,

성실성 때문에 혼자 있었고, 오만한 엄격성 때문에 혼자였고, 굽히지 않는 원칙과 판단 때문에 혼자였고,

자기 예술, 다시 말하자면 자신에게 자신이 요구한 것 때문에 혼자였다. - 폴 발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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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회적으로 나온 것일수록 내 심연 속에 강렬하게 가라앉았다 떠오른 것들이다.

한때의 진실이 남기고 간 발자국들, 가두려고 할수록 뚫고 지나가버리는 것. 태어남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소멸.

설명하면 할수록 해체되어버리는 것. 가까이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것. 참을 수 없어야 하는데 참아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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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함부로 살지 않는 일. 그래, 함부로 살지 말자.

할 수 있는데 안 하지는 말자. 이것이 내가 삶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적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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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넘긴 지금 어스름녘에 찾아오는 불안스러움의 정체가 무엇인지, 나는 정확히 모른다.

그것이나 이것이나 서로 닮아 있다는 것밖에. 무섭고 피로하고 추운 기분, 어떤 식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껴안고 살아가야 할 짐 같은 것이라는 것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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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보려 했으나 마음 붙이지 못한 헤어짐들, 슬픔들, 아름다움들, 사라져버린 것들,

과학적인 접근으로는 닿지 못할 논리 밖의 세계들, 말해질 수 없는 것들, 그런 것들. 이미 삶이 찌그러져버렸거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익명의 존재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싶은 욕망, 도처에 어른거리는 죽음의 그림자나,

시간 앞에 무력하기만 한 사랑, 불가능한 것에 대한 매달림,


여기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 이 말해 질 수 없는 것들을 내 글쓰기로 재현해내고 싶은 꿈.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들을 불러와 유연하게 본질에 닿게 하고 자연의 냄새애 잠기게 하고 싶은 꿈.

그렇게 해서 이 순간을 영원히 가둬놓고 싶은 실현 불가능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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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잠들 때 모든 갈등을 쉬게 할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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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또, 또다른 시간. 나, 여기 놓여 있다. 여기 멀리, 끝없는 길 위에, 나, 곧 지나갈 한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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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나가는 것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여전히 흐르는 시간이 지우고 가는 것들에 대해 추위를 느끼지만,

모든 지나가는 것은 생김새와 됨됨이를 새로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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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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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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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별은 빛나건만 그 빛남은 그대로 돌아오지 않네. 잊힘이 나를 위로하지만 또 나를 아프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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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람처럼 달리면서 국화를 꼭 쥐었다가 편 손바닥을 서로의 코에 갖다댔어요.

아아, 정말 좋은 그 순한 냄새. 성년이 되어 이렇게 무망으로 살아도, 가끔씩 그 냄새를 맡을 수만 있다면 이 청춘이 윤이 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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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빗소리를 듣고만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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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앞으로 안개가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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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바람이 매섭고 인적이 드물어졌다. 겨울이다. 

(겨울이 그립다. 겨울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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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은 어디를 헤매다가 어떻게 여기로 왔을까. 코끝이 시리다, 지난 계절 내내 헤매던 마음들.

이 겨울 어느 하루만이라도 가장 살고 싶은 장소에 놓여져봤으면, 거기서 잠시 쉴 수 있었으면. 

(이 여름 어느 하루만이라도, 아무 생각없이 잠시 쉴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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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편지에 그 여행의 그 바다가 그립다고 써왔다. 사무치게 그리우며, 그 그리움이 힘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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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엔 추억이 고여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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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잠시 동안일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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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진다는 것. 멀어졌다가, 멀어졌다가 돌아와서야 그 가까웠던 것의 진실을 남들한테도 말해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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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데도 이상한 일이다. 언제나 그들은 내 곁에 있다.

아무래도 나는 진짜 힘든 일을 그들에게 떠맡기려고 웬만한 일은 말을 안하고 있는 그런 사람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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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마을에 쌓인 흰 눈, 그 위로 내리는 어스름, 차갑고 아름답고 사무치는 눈···· 존재한다는 것의 눈물겨움.

마치 눈 위에 있는 맨발처럼 그렇게 차갑게··· 그리고 숨소리처럼 나직하게, 그 차가움의 고독을 나는 내 인생의 지표로 삼고 살아가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차가움의 고독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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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누구를 만나도 힘겹고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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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가지고 싶은 것은 가져서는 안 된다. 인적의 바퀴처럼 지나온 것들은 마땅히 묻을 것을 묻어준다··· 가져서는 안된다, 이것이, 나의 일생이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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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것 

(차가운 것. 이 책에는 차가운 것이 참 많다. 읽으면 읽을수록 차가워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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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갔다. 많은 것들이 그 시간 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무엇을 잃었기에 이렇게 광대 같아졌을까.

정면을 피해다닌 탓일까. 싸울 일이 있으면 입을 다물어버렸고, 상대편이 고갤 쳐들면 묵묵히 숙여버렸다.

한순간을 모면하는 것들로 나는 시간 속을 지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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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바람이 불지? 그 여자, 역시 울음이 터질 듯한 얼굴로 어린 아들에게 대답한다.

바람은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서로 부르며 손짓하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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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부서져가는 삶의 비밀들을 감지해나갔고,

그럼에도 '우리 가슴으로 흘러드는 한 조각의 빛'이 존재함도 믿게 되었다.


















*


책을 읽는 내내 느껴지는 차가움에,

아무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들.


그렇게 7월의 끝자락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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