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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캠핑여행_1] 밀라노와 피렌체를 지나 스위스로

|2018년 8월

|fuji x-t1, 20mm, 35mm



예전엔 아무리 바빠도 한두달 이내에는 포스팅을 했던 것 같은데, 8월 이야기를 11월의 끝자락에서 쓰려니 당황스럽다..

쌓여가는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그때 당시에는 새롭고 좋으면서도 시간이 흘러 너무 많이 쌓여버리니 처내기에만 바쁜 것 같다. 그러면 안돼는데.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일까- 시간의 여유는 있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하면 그건 모순인걸까.


아. 이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려고 사진을 들추어보니, 그 시간들이 머릿 속을 스쳐지나가면서 힘들었던 기억들이 생각나.

그 시작이 밀라노와 피렌체, 바로 이탈리아였다. 내 다시는 이탈리아에 가지 않으리 다짐했었던. (결국 두 달 후에 다시 베네치아에 갔지만)


65리터 배낭을 처음 메는 언니와 떠나는 여행이었다. 공식적인 우리 자매의 첫 여행이랄까.

언니와 나는 한살 터울이고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일때 치고박고 싸운게 마지막 싸움이다.

20대에도 사이가 나름(가끔 말다툼을 하는건 당연한거고) 좋았지만 내가 결혼을 하고 30대가 되니 자매 사이가 더욱 돈독해진 것은 사실이다.


언니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

나는 '시작을 하지 않아서 여행이 좋은 건줄 모를거야'라고 언니가 떠나지 않은 이유를 짐작했다.

이 여행은 그런 '여행을 잘 모르는 언니'와 '여행없이 못 사는 동생'이 떠나는 여행인 것이다.


그런데 늘 무거운 배낭도 내가 편히 맬수 있게 오빠가 들어주고, 그런 오빠에게 의존하고 오빠를 따라가기만 바빴던 나인데 -

이번에는 그 반대로 내가 모든게 처음인 언니를 도와주고 모든 걸 내가 해내야만 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걸 왜 못하지?'라는 생각을 꺼내었지만 깊이 생각하면 '언니는 이 모든게 처음일텐데, 나는 아니잖아.'라는 생각으로 다시 생각을 다잡았다.

이 여행에서 나는 두 생각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처음엔 뭐든지 서툴테니까 여행 기간동안에 내 생각에는 아주 단순한 일일지라도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싶었다.

생각해보면 이건 언니도 언니 나름이겠지만, 나에게도. 늘 오빠에게 기대어 의존하기만 했던 내게도 조금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일거라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의지를 넘어 의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오빠를 만나고부터는 많이 달라진 것 같아 늘 다시 바로 세우고자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니 또한 나에게 의존하되 의존을 넘어서서 성숙해 졌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다. 그래 이 여행에서 우리는 성숙해지자 라고.

'언니와 벨기에에서 이탈리아 밀라노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줄이야, 인생은 아무것도 알 수 없어. 그러니 우린 이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해' 라고.



그렇게 나의 다짐과는 다를 수도 있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여정이 시작 되었다.

여행일정은 모두 내가 결정했다. 언니가 모든 걸 내게 맡기기도 했고 중간 중간 언니에게 의견을 구하기도 했지만 큰 이견이 없어 계획은 쉽게 만들어졌다.


10일 여행. 밀라노로 들어가 피렌체에서 2박 3일, 체르마트에서 2박 3일, 인터라켄에서 5박 6일, 베른에서 1박 2일.

내 욕심도 한 몫했다. 스위스를 가는데 캠핑을 포기할 수 없어 언니에게 캠핑을 제안했고 무거운 건 내가 들겠다고 나름 언니를 회유했다.

그렇게 언니는 나의 65리터 배낭을 메고, 나는 오빠의 85리터 배낭을 메고 우리는 비행기를 탔다.




언니는 한국에서 벨기에로 왔고, 벨기에에서 몇일 머문 다음 나와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언니는 유럽여행이 처음이었다. 해외는 일본에 다녀온 것이 다인 언니었다.


우스갯소리로 언니에게 부럽다고 했다.

유럽이 처음이잖아. 언니가 가질 그 두려움과 설레임이 나는 부러워, 라고.




벨기에에서 1시간 조금 걸리는 밀라노. 제주도 가는 기분이라고 생각해야 하려나.

그냥 비행기가 떴다 싶으니 밀라노에 도착해 버렸다.


밀라노는 작년에 유럽여행 할때 잠시 들른 곳인데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으니 나도 처음이라고 해야겠다.

우린 기차를 타고 피렌체로 향할 예정이었지만 밀라노도 둘러보기 위해 비행기 시간을 늦추었다.






언니는 이탈리아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로망은 깨졌다.

8월의 밀라노는 너무나도 더웠다. 벨기에에 찾아온 더위는 물러났는데, 밀라노는 여전히 머물러 있었나 보다.

겨울을 좋아하는 우리 자매는 밀라노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무더위에 꽤나 당황했다.







기차역에 짐을 맡기고 대성당으로 향했는데, 대성당보다는 이 갤러리아가 더 눈에 들어왔다.

대성당 앞에는 비둘기가..맙소사 비둘기가..세상 비둘기 다 모여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필 역에서 나가자마자 상인이 내게 팔찌를 사라며 내 팔에 올리다시피 들이미는데 짜증도 함께 들이닥쳤다.

그래 그게. 언니의 첫, 이탈리아의 모습이었을거다.








그리고 언니의 첫 유럽여행의, 첫 이탈리아의 식사는 피자와 파스타였다.

갤러리아 안에 있는 레스토랑이라 그런지 가격도 한 몫했다. 맛은 한 몫하지 못했지만.






미칠듯한 더위에 시원한 맥주와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우리에게 정말, 성수같은 기분이랄까.

그냥 바로 피렌체에 갈걸, 하면서 후회했다. 아마 밀라노 다시는 안가겠지.


밀라노에서 바로 스위스로 넘어가면 되겠지만 굳이 피렌체로 향한 이유는 내가 그 피렌체의 아름다움에 반했기 때문에 언니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피렌체에 도착해 호텔 체크인을 하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찾은 곳은, 작년에도 왔었던 곳인 토스카나 레스토랑 Trattoria 13 Gobbi이었다.

S.M.N역 근처에 한국인에게 유명한 티본스테이크 집이 있지만 나는 이 곳을 고집했다.

분위기도 좋고 맛도 어느정도 보장 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우스와인과 티본스테이크, 파스타를 주문했다.

식전빵으로 나온 빵이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돌인줄 알았다.




스테이크는 역시나 너무 맛있었다.




이 파스타는 그럭저럭..작년과는 달리 너무 정신도 없고, 직원들의 무뚝뚝함. (나는 익숙하지만, 언니가 당황스러워했다)

먹자마자 밖으로 나와 맥주 몇병을 사들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도 너무나도 먼 것 같아 힘들었다.


그때 아차 싶었다. 같이 떠나는 여행이었으니, 같이 모든 걸 정했어야 했나 싶은.

호텔도 나는 적당하게 잘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오래되고 방음이 되지 않은 낡은 호텔이라 당황스러웠다.

40일 넘게 유럽배낭 여행을 하면서 허름한 호텔, 게스트하우스에서 많이 묵었던 나는 불편해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런 낡은 호텔이 처음인 언니는 불편해 하고 힘들어 했다. 그런 언니를 이해했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찾은 곳은 무려 구글 평점 4.6인 유명한 피자집.

근데 다들 피자 이렇게 태워서 먹나 원래..






우리가 이상한걸까? 진짜 너무 더워서 걷기조차 싫은 날씨였다.

어떻게든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어야해서 두오모성당 앞에 있는 아메리칸카페 Arnold Coffee를 찾았다.


두오모통합권을 끊어왔는데 땡볕 긴줄 보고 시간 예약된 쿠폴라를 제외하고는 다 포기했다.

쿠폴라는 시간을 예약했기 때문에 줄서서 기다릴 일은 없었기에 -










또 쿠폴라에 막상 올라가보니 뷰는 조토의 종탑이 더 좋았던 걸로.

조토의 종탑은 좁고 나의 인생샷을 건지기에는 무리지만 쿠폴라가 보이는 뷰가 아름다워 눈으로 담기에도 충분하다.






덥고 힘들지만, 아름다운 건 아름답네.





그러고보니 오페라 박물관에도 다녀왔구나. 더워서 에어컨 바람 쐴 겸 들어간거라 잊고 있었다.





이번에는 샌드위치? 파니니?와 와인을 사서 미켈란젤로 언덕에 가서 일몰을 보기로 했다.

피렌체에 왔으니 당연하기도 했고, 내가 그 풍경에 반해 피렌체를 사랑하게 된 거였으니 -


라 페툰타(La Fettunta)라는 2개로 나누어져있는데 왼쪽은 레스토랑이고(티본 스테이크가 맛있다고 한다)

오른쪽은 사진처럼 샌드위치를 파는 곳이다.





샌드위치는 6유로인데 하나면 둘이서 나누어 먹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알아서 반으로 잘라주시기도 하고.

우리는 돼지고기가 들어간걸로 주문했고, 이 곳에서 와인도 한병 샀다.




그렇게 와인와 샌드위치를 사들고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향하는 길.




비닐봉지에 와인을 담아주셨었는데 그 비닐봉지가 뜯어지면서 와인이 떨어지고..사진처럼 깨지고 말았다.

다리 위에서 둘다 벙쪄서 할말을 잃었..지..


깨진 유리를 다시 잘 담아 와인 사러 간 곳으로 향했다. 힘들게 왔는데 다시 돌아가려니 얼마나 힘이 빠지던지. 비닐봉지를 탓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우리 잘못도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울상을 짓고 다시 돌아가니 '라 페툰타'의 아주머니도 함께 아쉬워 해주시면서 새로 산 와인가격을 깎아 주셨다.

아주머니의 한결같은 친절함이 기억에 남는다.


 '피렌체 정말 되는일이 없네..' 라며 우리는 멘탈이 깨질 것 같지만 다시 다잡아야 했다. 

아마 그 순간 서로 집에 가고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시 힘들게 왔던 길을 돌아가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향했다.

예정대로였다면 미리 도착해서 자리를 잘 잡았을 텐데, 이미 어디든 만석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저기 저 멀리 뷰 좋은 자리를 비집고 가서 앉을 힘조차 없었다.

뭔가 기운이 쫙 빠져버려서 너덜너덜해진 기분이랄까.




그리고 애석하게도,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배터리가 다 닳아 카메라가 꺼졌다.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밤인데 - 

되는 일 진짜 없네 라고 하기엔 배터리를 하나 더 안챙긴 내 잘못이라고 해야겠지, 라며 또 마음을 다 잡는다.


그리고 또 애석하게도, 이 샌드위치는 언니 입맛에 맞지 않았다.

나는 잘 먹었지만..언니는 고기냄새가 올라온다며 얼마 먹지 못했고 그 날 저녁에 호텔에서 조금 먹은것 마저 다 밷어내고 말았다.


오래 된 방음이 되지 않는 낡은 호텔, 그 안을 비집고 나타나는 모기, 길거리의 부랑자, 레스토랑 직원의 차가움, 여행지의 흔한 바가지 가격,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들. 

이 모든게 나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평범한 것들이었는데 언니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언니는 이 모든 것들을 낮설어 하고 힘들어 했기에 옆에 있는 나도 불안해지고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언니가 안쓰러웠다. 맛집이라고 해서 데려간 곳에서 산 샌드위치를 먹고 토까지 했으니.

힘들게 오른 미켈란젤로 언덕에서도 내가 생각 보여주고 싶었던 아름다운 노을도 지쳐서 눈길을 줄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되었던 낮과는 다르게 밤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 그런지 참 좋았고

언니와 나는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지난 힘들었던 낮을 훌훌 털어보내곤 했다. 취중진담과 함께.


언니도 언니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고있다.

동생과 떠난 이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을, 이 여행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이겨내야 했는지.

우리에겐 함께 한 세월이 있었기에 굳이 말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힘들지만 다 괜찮아.'라고 우리는 말했다. 힘들지만 괜찮아라니.

여행이 늘 순탄할 수 없어, 내가 바랬던 대로 모든게 흘러갈 수는 없어. 라고 나는 또 생각했다.



14번 버스와 D번, 23번 버스. 위에서 떨어지는 불편한 샤워기.

성수 같았던 아메리칸 아이스 아메리카노. 18유로 와인. 영화같았던 미켈란젤로 언덕에서의 커플. 그리운 사람.

피렌체에서 마주한 것들. 언니와 나.



앞으로 또 얼마나 힘든 여정이 펼쳐질 지는 모르겠지만. 다신 안가겠다던 피렌체 사진을 보니 다시 또 가고싶어졌지만.

아. 이 모든 것으로 언니의 이탈리아 로망은 산산조각 났다는 사실은, 나쁘지 않네.


나의 피렌체에는 이제 언니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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