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늘 어디가 떠나는 혹은 향하는 기차 안에서 이 책을 읽고는 했다.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 중간 중간마다 겉 잡을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와서,

기차 창 밖을 바라보며 그 눈물을 애써 삼키려고 노력하고는 했다.


그렇게 이 책을 모두 읽고 나니, 어버이 날을 앞두고 있네. 타이밍 참.

아빠와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게 1월 26일. 3개월이 조금 지났다.

이렇게 오랫동안 부모님을 보지 못한 건 처음인 것 같다. 아마 그 기록은 계속 갱신 되겠지만. 


이 책에는 후회가 가득하다. 정말 셀 수 없을 만큼.

그 후회들이 이상하게 '감춰둔 주머니 속의 송곳이 튀어나와 너의 손등을 찍어 내리는 것 같았다.' 라는 책 안의 문장처럼

정말 나의 손등을 찍어 내리는 것 같았다. 그만큼 이 책의 문장들이 내 가슴속에 박혀버린 기분이다.


가수 이적은 이 책을 

'아직 늦지 않은 이들에겐 큰 깨달음이 되고, 이미 늦어버린 이들에겐 슬픈 위로가 되는, 이 아픈 이야기' 라고 말했다.


하지만 깨달음이라는 것은,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언제나 마음 한 켠에 남아있었다.

아니 깨달음이 아니라 그런 마음. 잘 해드려야겠다는 그런 마음.


멀리 떨어져 있으니 더 알게 되는 그 소중함 이라는 것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도 알 수 있기를 - 노력하는 내가 되기를.















한 인간에 대한 기억은 어디까지일까. 엄마에 대한 기억은?


/


기억 끝에 어김없이 찾아드는 후회들.


/


세상의 대부분의 일들은 생각을 깊이 해보면 예상 할 수 있는 일이다.

뜻밖이라고 말하는 일들도 곰곰 생각해보면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뜻밖의 일과 자주 마주치는 것은 그 일의 앞뒤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뿐.


/


앞을 보지 못하는 이인데도 그는 여행 다니는게 취미라고 했어, 엄마.

엄마는 너의 얘기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가 여행을 하는 곳은 어디일까? 너는 순간 멍해졌다.


/


감춰둔 주머니 속의 송곳이 튀어나와 너의 손등을 찍어내리는 것 같았다.


/


그는 얼음장 같은 손을 잡았다. 이 손을, 이 손을 가진 여인을 어쩌든 기쁘게 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의 입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따라오란다고 따라다니면 어떻게 하느냐고 엄마를 책망했다.


/


울음을 그친 엄마는 이제 그를 달랬다. 누가 해주든 밥은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에게 네가 밥을 잘 먹고 있어야 엄마가 덜 슬프다고 했다. 슬픔. 엄마에게서 슬픔다라는 말을 처음 들은 순간이었다.

그는 왜 자신이 밥을 잘 먹고 있어야 엄마가 덜 슬픈지 알 길이 없었다. 

그 여자 때문에 엄마가 집을 나갔으니 그 여자가 해주는 밥을 먹으면 엄마가 슬퍼야 맞을 것 같은데 엄마는 반대로 말했다.

그 여자가 해주는 밥인데도 그걸 먹어야 엄마가 덜 슬프다니.


/


엄마를 찾아내면 오로지 엄마만을 돌보고 싶은 욕망으로 그의 가슴은 터질 듯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이미 그럴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


그때는 왜 그것이 평화롭고 복된 일이란 걸 몰랐을까.

아내한테 미역국 한번 끓여줘본 적 없으면서 아내가 해주는 모든 것은 어찌 그리 당연하게 받기만 했을까.


/


당신은 이 집을 내키는 대로 떠났다가 돌아오면서도

아내가 이 집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


그렇게 남은 생을 살아갈 줄 알았다.


/


엄마를 모르겠어.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것밖에는.


/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말아라. 엄마는 네가 있어 기쁜 날이 많았으니.


/


당신은 오래 된 신작로처럼 내 마음속에 깔려 있네.

자갈밭 속의 자갈처럼, 흙속의 흙처럼, 먼지 속의 먼지처럼, 거미줄 속의 거미줄처럼, 젊은날이었네요.

사는 동안 어느 때도 이게 나의 젊은 날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당신을 처음 만나던 때를 생각해보니 젊은 내 얼굴이 떠오르네.


/


참 이상하지. 모든 것은 사람 손을 타면 닳게 되어 있는데,

때로 사람 곁에 너무 가까이 가면 사람 독이 전달되어오는 것 같기조차 한데 집은 그러지 않어.

좋은 집도 인기척이 끊기면 빠른 속도로 허물어져내려. 사람이 비비고 눙치고 뭉개야 집은 살아 있는 것 같어.


/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


그런데 우리까지도 어떻게 엄마를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으로 여기며 지냈을까.

내가 엄마로 살면서도 이렇게 내 꿈이 많은데 내가 이렇게 나의 어린 시절을, 나의 소녀시절을, 

나의 처녀시절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데 왜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을까.

엄마는 꿈을 펼쳐볼 기회도 없이 시대가 엄마 손에 쥐여준 가난하고 슬프고 혼자서 모든 것과 맞서고,

그리고 꼭 이겨나갈밖에 다른 길이 없는 아주 나쁜 패를 들고서도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서 몸과 마음을 바친 일생이었는데.

난 어떻게 엄마의 꿈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을까.

언니. 감나무를 옮겨심느라 파놓은 구덩이 속에 그만 얼굴을 처박고 싶었어.

나는 엄마처럼 못 사는게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엄마가 옆에 있을때 왜 아는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딸인 내가 이 지경이었는데 엄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고독했을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그런 부당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

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딘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언니, 언니는 엄마를 포기하지 말아줘, 엄마를 찾아줘.


엄마를 부탁해.








공유하기 링크
TAG
,
댓글
댓글쓰기 폼